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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식 컴퓨터 시대의 개막, ENIAC과 MARK I

IT조아(it-zowa) 2025. 9. 1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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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의 도구다. 하지만 불과 80년 전만 해도 세상에는 ‘전자식 컴퓨터’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 상상의 기계가 현실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 1946년,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ENIAC이 공개되었다. 인류 최초의 범용 전자식 컴퓨터, ENIAC은 곧 “전자식 컴퓨터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또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꿈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은 하버드 대학의 MARK I이었다.

전쟁이 부른 새로운 계산기

2차 세계대전 한가운데, 군대는 더 정확한 포탄 궤적을 계산하기 위해 수많은 수학자를 동원했다. 그러나 손으로 하는 계산은 너무 느렸다. 미국 육군은 더 빠른 계산기를 원했으며, 그 요청에 응답한 것이 두 개의 프로젝트였다.

  •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모클리(John Mauchly)와 에커트(J. Presper Eckert)가 이끈 ENIAC
  • 하버드 대학의 하워드 에이켄(Howard Aiken), 그리고 IBM과 함께 만든 MARK I

두 기계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전쟁이 요구하는 초고속 계산이란 같은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ENIAC – 전자식 시대의 개막

펜실베이니아 대학 무어 전기공학 연구소의 두 젊은 연구자, 존 모클리(John Mauchly)와 프레스퍼 에커트(J. Presper Eckert)가 제안서를 제출했다. “전자 회로로 계산을 하면, 사람보다 수천 배 빠르게 계산할 수 있다.” 당시에는 황당하게 들렸지만, 결국 미군은 이 아이디어를 채택했다. 그 결과 1946년 ENIAC(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이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ENIAC 개발은 1943년부터 시작되었다. 프로젝트는 비밀리에 진행되었지만, 규모와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ENIAC은 약 18,000개의 진공관으로 구성된 완전 전자식 컴퓨터였으며, 길이는 30미터이며 무게가 30톤에 달하는 거대한 장치였으며, 전력은 작은 마을 하나가 쓸 전기와 맞먹는 수준인 150kW를 소모했다.

 

연구실은 늘 진공관의 열기로 뜨거웠고, 고장이 잦아 엔지니어들은 거의 매일같이 진공관을 교체해야 했다. “ENIAC은 언제나 고장 나 있는 동시에, 언제나 고치고 있는 기계였다” 는 농담이 있을 정도였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ENIAC (출처 : 나무위키)

ENIAC의 첫 시연

1946년 2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ENIAC의 첫 공개 시연이 열렸다. 기자들과 군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ENIAC은 탄도 계산 문제를 단 몇 초 만에 풀어냈다. 언론은 이를 두고 “세계를 바꿀 전자두뇌(Electronic Brain)”라는 표현을 썼다. 그 순간은 전자식 컴퓨터 시대의 공식적인 개막이었다.

 

ENIAC의 성능은 당시로서는 경이로웠다. 초당 5,000회의 덧셈과 300회의 곱셈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바꾸려면 배선을 직접 다시 연결해야 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저장 프로그램 방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NIAC은 최초의 범용 전자식 컴퓨터로 인정받는다. 당시 이미 전자식 컴퓨터가 존재했지만, ENIAC은 범용성을 갖추었고, 2차 대전 후 민간 사회에 공개되어 널리 알려지면서 현대 컴퓨터의 상징이 되었다.

하버드 대학의 MARK I – 경쟁과 평가

한편 1944년 하버드 대학과 IBM이 개발한 MARK I전기기계식 컴퓨터였다. 길이 15미터이며 무게는 5톤이고, 수많은 기어와 릴레이(계전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본적인 사칙연산 및 제곱근 계산이 가능하고 덧셈 한 번에 약 0.3초가 걸렸다.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성능이었고, 하버드와 IBM은 MARK I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하지만 릴레이가 움직이며 ‘찰칵찰칵’ 소리를 내는 MARK I은 본질적으로 기계식 계산기의 연장선이었다.

하버드 MARK 1 (출처 : Britannica)

 

당시 언론은 MARK I을 “기계적 두뇌(Mechanical Brain)”라 불렀고, ENIAC을 “전자식 두뇌(Electronic Brain)”라 불렀다.

  • 하버드의 MARK I : 안정적이지만 느린, “기계의 연장”
  • 펜실베이니아의 ENIAC : 혁명적이지만 고장이 잦은, “새로운 전자 시대의 실험”

군과 학계의 평가는 분분했다. 일부는 “릴레이식이라도 안정적인 MARK I이 더 실용적”이라 했고, 다른 이들은 “전자식 ENIAC이야말로 미래”라고 보았다. 역사는 결국 ENIAC의 손을 들어주었다.

숨겨진 주인공들 - 프로그래머들의 등장 

ENIAC은 하드웨어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었다. 프로그램을 짜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당시 미군은 수학적 계산 능력이 뛰어난 여성들을 모집했는데, 이들이 바로 “ENIAC 레이디스”로 불린 여성 프로그래머들이었다. 케이블을 다시 꽂고, 스위치를 일일이 조정해 프로그램을 세팅하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창의적인 문제 해결 과정이었다. 이들은 최초의 프로그래머로서, 현대 소프트웨어 개발의 원리를 사실상 몸으로 발견해 낸 셈이다 

 

초창기 컴퓨터 사진에 늘 등장하는 여성이 그들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들의 기여가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수십 년이 지나서야 역사 속에 재조명되었다. ENIAC 탄생 50주년 행사에서 그들의 이름이 컴퓨터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다.

 

하버드 대학의 MARK 시리즈 개발팀에도 여성 과학자가 있었다.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는 MARK 시리즈의 프로그램 개발을 주도했고, 최초의 ‘버그(bug)’와 ‘디버깅(debugging)’이라는 용어를 남겼다. 후일에는 프로그래밍 언어 COBOL을 만들어 컴퓨터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했다.

ENIAC과 프로그래머 (출처 : wikipedia)

남겨진 유산

ENIAC과 MARK I의 경쟁은 단순한 기계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계에서 전자로, 계산에서 프로그래밍으로 넘어가는 문명의 전환점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번역을 하고, 슈퍼컴퓨터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모든 순간은 결국 ENIAC이 열어젖힌 문을 통과한 결과다.

“1946년,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전자식 컴퓨터 시대가 시작되었다.”

 

ENIAC은 그렇게 철의 괴물로 태어나 디지털 문명의 서막을 올린 주인공으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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