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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운영체제의 뿌리 ― 유닉스와 리눅스

현대 운영체제의 조상, UNIX오늘날 우리가 쓰는 운영체제를 떠올려 보자. 윈도우, 맥OS, 리눅스, 안드로이드, iOS…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공통된 조상이 있다. 바로 유닉스(UNIX)이다. 1969년 AT&T 벨 연구소에서 켄 톰프슨(Ken Thompson) 과 데니스 리치(Dennis Ritchie)는 거대한 운영체제 프로젝트의 실패를 딛고, 오히려 “작고 단순한 시스템”을 만들자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유닉스였다. 이름조차 농담처럼 지어졌지만, 그 속에는 철학이 있었다. “유닉스(UNIX)”는 ‘단순한(uni-) 운영체제’라는 뜻을 품고 있었다. 이 작은 실험은 현대 운영체제의 모든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C언어와 이식성의 혁명초기 유닉스는 특정 기계에 ..

플랫폼 전쟁의 시작, 운영체제의 탄생에서 스마트폰까지

운영체제란 무엇인가처음부터 운영체제(Operating System, OS)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의 컴퓨터에서는 사람이 직접 스위치를 조작하며 명령을 내렸다. 하나의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 매번 복잡한 절차를 반복해야 했고, 기계마다 다른 언어를 써야 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생각했다. “기계들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한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그 질문에서 출발해, 모든 기계에서 운영할 수 있는 통일된 운영체제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것은 훗날, 세상을 뒤흔드는 플랫폼 전쟁의 주인공이 된다. 컴퓨터에서 데이터를 입력받고, CPU가 계산을 수행하고, 결과를 저장하고 출력하는 과정을 관리하기 위해 운영체제가 태어났다. 처음엔 사람이 직접 마그네틱 테이프와 천공카드를 다루어야 했지만, 점점 그 과정..

[아는척 08] 운영체제의 진화 ― 인간과 기계의 대화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스치며 하루를 시작하고, 노트북 앞에서 일을 마친다. 그 사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기기와 인간의 사이를 이어주는 존재가 있다. 바로 운영체제(Operating System, OS)이다. 운영체제는 단순히 기계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기계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게 만든 통역자이자, 새로운 시대의 플랫폼 철학을 만든 존재다. 1940년대, 스위치를 일일이 조작하던 시대에서 출발해 유닉스와 리눅스를 거쳐, 윈도우와 맥이 경쟁하던 PC의 황금시대를 지나, 이제는 안드로이드와 iOS가 손 안의 세계를 지배한다. 운영체제의 역사는 곧 “인간이 기계에게 사고하는 방식을 가르친 역사”이며, “기계가 인간의 일상 속으로 스며든 과정”이다. 이 단원에서는..

조용한 혁명 ― 여성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발자취

에니악(ENIAC)이나 마크 1(Mark I) 같은 초창기 컴퓨터 사진을 보면, 언제나 거대한 기계 옆에 서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그녀들은 단순히 보조 인력이 아니라, 그들은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였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그들의 이름은 자주 가려졌다. ‘컴퓨터 과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튜링상의 역사를 보더라도, 지금까지 79명의 수상자 중 여성은 단 3명뿐이다. 초창기부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도 왜 여성들의 이름은 늘 조용히 지워졌을까? 우선 그동안 튜링상을 받거나 혹은 다른 큰 업적을 남긴 여성 소프트웨어 개발자 몇 사람을 소개한다. 프랜시스 앨런 ― 컴파일러를 설계한 첫 번째 여성 프랜시스 앨런(1932~2020)은 2006년, 역사상 처음으로 튜링상을 받은 여성 과학자였다. 교사로 ..

디버깅의 탄생, 그레이스 호퍼 이야기

오늘날 프로그래머들은 오류를 ‘버그(bug)’라 부르고, 그것을 고치는 일을 ‘디버깅(debugging)’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단어가 정말 벌레(bug)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알고 있었는가? 더 흥미로운 건, 그 일화 뒤에는 한 여성 과학자의 업적이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단순히 버그를 잡은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도록 만든 개척자, 프로그래밍 언어와 컴퓨터 과학의 토대를 세운 인물이었다.수학과 호기심으로 세상을 해석한 소녀1906년, 뉴욕에서 태어난 한 소녀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과학에 깊이 빠져들었다. 호기심은 늘 그녀의 무기였고, 그 열정은 결국 예일대학교 수학 박사 학위로 이어졌다. 당시 여성으로서 수학 박사를 받는 일은 극히 드물었는데, 그녀는 예일 역사상 ..

에니악 개발의 뒤에 숨겨진 6명의 영웅들

세계 최초의 전자식 범용 컴퓨터, 에니악(ENIAC, 1946). 그 유명한 흑백 사진 속에는 거대한 기계 옆에 서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늘 함께 등장한다. 그들은 누구였을까? 단순히 비서이거나, 홍보를 위한 모델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여성들은 실제로 기계를 조작하며 코드를 연결했던, 에니악 개발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인물들이다. 하드웨어를 설계한 애커트와 모클리의 이름은 신문마다 대서특필되었지만, 시연 프로그램을 만든 여섯 명의 여성 프로그래머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의 공로는 무려 40년 동안 세상에서 지워져 있었다. 그 긴 침묵을 깨고, 역사의 장막 속에서 그녀들을 불러낸 사람은 컴퓨터 역사 연구자 캐시 클라이먼(Kathy Kleiman)이었다. 그녀는 끈질기게 자료를 추적하..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는 여성이었다, 에이다 러브레이스

19세기 영국, 컴퓨터라는 단어조차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시절. 그 시대에 한 여성은 이미 기계가 단순 계산을 넘어 음악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꿈꾸었다. 그녀의 이름은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 세상이 아직 컴퓨터의 형태조차 알지 못할 때, 최초의 프로그래밍을 설계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놀랍게도,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가 다름 아닌 여성이라는 점을 말해준다.수학으로 길을 연 소녀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 는 1815년, 유명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 경의 딸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는 태어난 지 한 달 된 딸을 두고 집을 떠났다. 그 시절 영국 법은 이혼 시 양육권을 아버지에게 부여했지만, 바이런은 전혀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에이다는..

[아는척 07] 초기 여성 프로그래머들의 여정

오늘날 프로그래밍은 공학의 최전선이자 ‘남성의 직업’으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역사의 첫 장을 펼쳐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프로그래밍’이라는 개념을 가장 먼저 개발했던 사람은 바로 여성, 에이다 러브레이스였다. 이후 컴퓨터가 막 태동하던 시절,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인 에니악의 거대한 회로 앞에서 기계를 움직였던 이들 역시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은 대중의 기억에서 인식되지 않은 채로, 오랫동안 “아는 사람만 아는 전설”로만 남아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학문에 대한 정진으로 유리천장을 깨부순 위대한 여성 프로그래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려 한다. 러브레이스에서 그레이스 호퍼, 그리고 수십 년 동안 남성 중심으로 수여된 튜링상에서 드물게 이름을 올린 여성 과학자들까지. 더 ..

불편함이 만든 혁신, USB의 인간학

기술의 역사는 종종 속도와 용량, 즉 숫자의 발전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때로는 그보다 더 사소한, 그러나 훨씬 인간적인 감정이 기술을 움직인다. 그 이름은 불편함이다. 책상 밑과 컴퓨터 뒤편의 케이블 지옥을 해방시키고, 꽂을 때마다 50% 확률 게임을 벌이게 만들었던 그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20년 넘게 진화해 온 기술. 바로 USB(Universal Serial Bus) 이야기다.혼돈의 시대 ― 케이블의 바벨탑USB가 등장하기 전인 1990년대 초, 컴퓨터의 뒷면은 언어가 뒤섞인 도시처럼 혼돈 그 자체였다. 마우스, 프린터, 키보드, 모뎀, 조이스틱이 모두 각자의 문법을 가지고 있었다. 마우스를 위한 길고 얇은 직렬 포트(Serial Port), 프린터를 위한 25개의 핀이 빽빽한 병렬 포트(Para..

베토벤 교향곡이 정한 CD의 용량

오늘날 우리는 손끝 하나로 수천만 곡의 음악을 불러온다. 스마트폰 속 스트리밍 세상에서, 한때 책장 한 줄을 가득 채웠던 은색 원반, CD(Compact Disc)는 이제 잊힌 유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작고 반짝이는 원반 안에는 19세기의 예술과 20세기의 기술이 손을 잡은 순간이 숨어 있다. 기술자와 예술가의 논쟁1980년대 초, 필립스(Philips)와 소니(Sony)는 아날로그 LP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 새로운 디지털 오디오 매체인 Audio CD를 만들고 있었다. 디스크의 지름과 재생 시간, 즉 “얼마나 담을 수 있는가”가 마지막 과제였다. 필립스는 실용적인 기준을 제시했다.“11.5cm 크기에 60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소니의 회장이자 클래식 애호가 오가 노리오(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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