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상을 바꾼 발명품을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은 주저 없이 퍼스널 컴퓨터(PC)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시작을 애플에서 찾는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차고에서 만든 애플 컴퓨터의 신화는 너무도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개인용 컴퓨터’라는 발상의 씨앗은 애플보다 먼저, 1970년대 초 실리콘밸리 한 연구소에서 이미 움트고 있었다.
1973년, 제록스 PARC 연구소
그곳은 실리콘밸리의 팔로알토(Palo Alto) 시에 위치한 제록스 PARC(Palo Alto Research Center) 연구소였다.. 1973년 이 연구소에서 세상에 나온 제록스 알토(Xerox Alto)라는 시스템은 지금 우리가 쓰는 PC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기계였다. 그래픽 방식의 데스크톱 화면, 아이콘을 클릭해 조작하는 쉬운 인터페이스,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제안한 마우스까지 실제로 구현해 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개인용 컴퓨터에서 사용되고 있는 윈도우와 맥 운영체제의 뿌리가 담겨 있었던 셈이다.
이후 1981년 Xerox 8010 Star 시스템으로 발전하면서, 마우스 클릭만으로 문서를 편집하고 프로그램을 조작할 수 있는 환경이 완성된다. 이는 문자 명령어를 외워야만 했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난 사용자 인터페이스 혁명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혁신이 연구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알토와 8010 Star는 실험실과 일부 대학에서만 사용되었고,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는 못했다.

대중화의 길을 연 애플 컴퓨터
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 ‘PC의 시작’은 애플로 각인되어 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애플이 최초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퍼스널 컴퓨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1976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손수 회로를 설계하여 만든 애플 I은 사실상 취미용 키트였다. 스티브 잡스의 아비지 집 차고에서 만든 애플 I은 약 200대가 제작되었고, 키보드와 모니터조차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수익으로 (주)애플컴퓨터가 설립되었고, 이듬해 애플 II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애플 II는 키보드와 케이스가 갖춰진 완제품이었고, TV에 연결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컬러 그래픽을 지원했다. 당시 무지개빛 애플 로고는 바로 이 혁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여기에 세계 최초의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인 VisiCalc가 더해지자, 애플 II는 단순한 가정용 기계를 넘어 사무실과 학교에까지 퍼져나갔다. 집에서는 가계부를, 회사에서는 회계를 처리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이는 소프트웨어 산업을 꽃피우는 토대가 되었고, 애플 II는 ‘기계’가 아니라 책상 위에서 사용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애플은 단순히 연구용 실험이 아닌, 대중에게 팔리는 컴퓨터를 만들어냈다. 이 점에서 애플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PC의 시작’으로 각인되었다.


1980년대 IBM PC와 매킨토시
애플의 성공은 다 기업들을 자극했다. 그중 가장 강력한 도전자는 IBM이었다. IBM은 독점 대신 설계를 공개하여 ‘호환 기종’을 허용하는 전략을 택했고, 수많은 제조사들이 IBM 호환(Compatible) PC를 쏟아냈다. 설계 정보가 개방된 덕분에 폭발적인 생태계가 형성되었고, 이 과정에서 운영체제를 공급한 마이크로소프트가 급부상한다. 결국 1980년대는 애플의 ‘폐쇄적 완성품’과 IBM 진영의 ‘개방적 생태계’가 맞붙는 시대로 흘러갔다. 경쟁 구도는 PC 보급을 가속화시켰고, 대세는 IBM과 윈도우 쪽으로 기울어 본격적으로 윈도우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1984년, 애플은 다시 한번 반격에 나선다. 그것이 바로 매킨토시(Macintosh)였다. 매킨토시는 제록스 알토에서 제시한 GUI 개념을 대중에게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냈다. 복잡한 명령어 대신 아이콘과 폴더, 마우스 클릭으로 조작하는 환경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었고,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매킨토시는 단순한 신제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컴퓨터를 기술의 세계에서 생활의 세계로 끌어내린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연구소에서만 다뤄지던 기계가 이제 가정의 책상 위(desktop)로 내려와, 개인의 도구가 된 것이다.

'최초'와 '성공' 사이
퍼스널 컴퓨터의 씨앗은 분명 제록스 연구소에서 뿌려졌다. 그러나 그 씨앗을 싹 틔워 대중에게 내놓은 것은 애플이었다. 제록스가 보여준 것은 가능성, 애플이 만든 것은 실재였다.
따라서 ‘PC의 시작’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단일하지 않다. 제록스는 개념의 원형을, 애플은 생활 속 현실을 만든 주체였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IBM과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세하며 오늘날의 개인용 컴퓨터 시대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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