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1994> 속 삐삐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는 나정(고아라)이 누군가의 삐삐에 숫자 메시지를 남기고, 상대방이 공중전화로 회신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삐삐 화면에는 숫자만 표시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숫자 조합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예를 들어, '1004'는 '천사'라는 뜻으로 애정이나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암호로 쓰였다. 이렇듯 삐삐는 단순한 호출 기기를 넘어, 사람들이 감정을 담아 소통하던 하나의 문화였다.


처음 등장한 ‘이동통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신기했고,
일상 속에서 새로운 낭만을 만들어 준 장치였다.
이번 글에서는 통신 기술의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삐삐에 대해 살펴본다.
삐삐의 작동원리
유선전화만 있던 시대에, 전화선의 한계를 넘어선 첫 무선 소통 도구가 등장했다. 바로 삐삐였다. 언제 어디서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혁신이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허리춤에 삐삐를 차고 다니며 짧은 숫자 메시지로 마음을 전했다.
삐삐도 전화기처럼 고유 번호를 가진다. 연락하고 싶은 사람의 삐삐 번호로 전화(공중전화·집전화)를 걸고, 전화기 다이얼로 전하고자 하는 숫자를 입력하면 그 숫자가 삐삐 화면에 표시되는 방식이다.
대부분은 “이 번호로 전화해 줘”라는 의미로 자기 전화번호를 남겼다..

삐삐의 화면은 작은 한 줄 문자만 표시할 수 있었고, 버튼이라고 해봐야 ‘앞으로·뒤로·재생’ 정도의 단순한 기능뿐이었다. 즉, 삐삐는 메시지를 “받기만” 하고, 보낼 수는 없었다. 답장을 하려면 반드시 가까운 공중전화를 찾아가야 했다. 야외에서 삐삐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은 “무슨 얘기지?” 하며 공중전화로 달려가는 일이 흔했다.
숫자로 마음을 전하던 문화
삐삐는 숫자만 표시되기 때문에, 단순히 전화번호를 남기는 대신 숫자로 암호를 만들어 메시지를 주고받는 문화가 생겨났다. 특히 연인들은 자주 연락하기 위해 각종 비밀 코드처럼 숫자를 주고받았다.
삐삐 사용자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던 숫자 암호는 다음과 같다
- 0024 : 영원히 사랑해 (언제까지나 변치 않는 사랑)
- 0090 : 가는 중이야! (oo~ go)
- 0179 : 영원한 친구 (우정 변치 말자!)
- 0404 : 영원히 사랑해~(영사영사)
- 100 : 돌아와(back)
- 100024 : 많이 사랑해
- 10288 : 열이 펄펄(아파)
- 5555555 : 호~~~ (10288의 답장, 걱정되거나 위로하는 느낌)
- 1052 : (LOVE, 진심 담긴 고백)
- 108 : 고민 중.. (108 번뇌)
- 982 : good bye (=882882 빠이빠이)
- 1212 : 사랑해 사랑해 (반복해서 고백하는 느낌)
- 2525 : 웃어 웃어 (미소 짓자는 의미)
- 7777 : 칠칠치 못해 (실수했을 때, 장난스럽게)
- 1004 : 천사 (착한 사람을 부를 때)
- 8282 : 빨리빨리 (서두르라는 의미)
- 7179 : 친한 친구 (오랫동안 함께한 친구 의미)
- 4040 : 보고 싶어 (상대방을 그리워할 때)
- 0909 : 오래오래 (변치 말자는 의미)
- 5252 : 뭐 해 뭐 해? (상대방의 상황을 물을 때)
- 17317071: 너를 사랑해(뒤집으면 I LOVE U)
38317: 사랑해 (뒤집으면 LIEBE, 독일어로 사랑해)

삐삐의 역사 타임라인
삐삐는 단순한 통신 기기를 넘어, 한 시대의 소통 문화를 상징한 아이콘이었다. 그렇다면, 삐삐는 언제 등장해 어떤 과정을 거쳐 사라졌을까? 삐삐의 역사 타임라인을 따라가 보자.
1980년대 : 삐삐의 등장
대한민국에서 삐삐 서비스가 처음 시작된 건 1983년이었다. 초기에는 병원, 기업 등에서 업무용으로 사용되었으며 012·015 같은 번호가 무선호출 서비스 번호로 지정되었다.
1990년대 : 삐삐의 전성기
1990년대 중반, 무려 1,500만 명 이상이 삐삐를 사용했다. 처음엔 숫자만 표시됐지만, 한글 메시지가 가능한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더 인기를 끌었다. 직장인·학생들 사이에서는
“내 삐삐 번호 알려줘”가 자연스러운 일상 표현이 되었다.
1997년 이후 : 삐삐의 쇠퇴
휴대전화 보급이 시작되면서 삐삐는 빠르게 자리를 잃었다. 특히 이동통신사의 SMS(문자 메시지)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삐삐의 필요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2000년대 초반 대부분의 통신사가 삐삐 서비스를 종료했다.
2010년대 이후 : 일부 분야에서만 생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병원·소방서·군대 등 즉각적인 통화가 필요하지 않은 분야에서는 여전히 삐삐가 활용되기도 했다. 2014년에는 012 번호가 IoT 용도로 재활용되면서 삐삐의 흔적이 일부 남아있다.
삐삐를 보완한 시티폰의 등장
1990년대 후반, 휴대전화 요금은 비싸고 삐삐는 음성 통화가 불가능했다. 그 사이에서 등장한 것이 시티폰이라는 무선전화 서비스였다. 시티폰은 기지국 반경 내에서는 바로 통화할 수 있어 공중전화를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가격도 휴대전화보다 저렴해 학생·직장인에게 특히 인기였다.
하지만 일반 휴대전화처럼 전국 어디서나 통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티폰은 무선랜 기반의 이동통신 서비스로 특정 지역(기지국 반경 내)에서만 통화가 가능했다. 또한, 이동 중에 다른 기지국으로 전환되지 않아서 통화 중에 이동하면 전화가 끊겼다. 대신 이동통신망을 사용하는 휴대전화보다 요금이 저렴했다.
삐삐가 ‘호출의 시대’를 열었다면, 시티폰은 직접 통화할 수 있는 첫 무선전화로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시티폰의 역사 타임라인
1997년 : 시티폰 서비스 개시
1997년, 한국통신(현 KT)과 신세기통신(현 SK텔레콤)이 시티폰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지국 반경 내에서만 통화 가능했지만, 휴대전화보다 저렴한 요금 덕분에 학생과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1999년 : 가입자 110만 명 돌파
시티폰은 서울, 부산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기지국을 확장하며 빠르게 확산되었다. 특히 ‘학생폰’으로 불리며 10~20대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휴대전화가 부담스러웠던 젊은 층에게 시티폰은 가성비 좋은 대안이었다.
2000년대 : 휴대전화의 급성장과 시티폰의 몰락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휴대전화 요금이 점점 내려가고, 이동 중에도 끊기지 않는 휴대전화가 대세가 되면서 시티폰 사용자는 급감했다. 이동통신망 발전과 함께 시티폰은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2002년 : 시티폰 서비스 종료
시티폰은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잊혀 갔다. 결국 2002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서비스가 공식 종료됐다. 짧지만 기억에 남는 한 시대의 장이 마무리된 순간이었다.
삐삐와 시티폰 이후… 스마트폰까지
삐삐와 시티폰이 열어준 이동통신의 시대는 어디서든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휴대전화로 이어졌고, 이 휴대전화는 더 직관적인 조작 방식과 인터넷의 결합을 통해 다시 스마트폰으로 진화했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지금 우리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통화하고, 외국인이 만든 콘텐츠에 댓글을 달며, 외국인들이 한국의 문화를 소비하며 전 세계가 함께 공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알쓸잇(it)잡 > 아는척-컴퓨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는척 13] 인터넷이라는 바다, 웹이라는 항로 (0) | 2026.02.09 |
|---|---|
| 내 집 인터넷 설치의 모든 것, 쉽게 이해하기 (0) | 2026.02.06 |
| PC통신의 낭만, 전화선 위의 온라인 세상 (0) | 2026.02.02 |
| 봉화에서 스마트폰까지, 인간이 소통하던 통신의 긴 여정 (0) | 2026.01.30 |
| [아는척 12] 통신과 인터넷의 발전 (0) | 2026.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