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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보다 큰 단위는? 원자보다 작은 단위는?

IT조아(it-zowa) 2025. 9. 30.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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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단위를 만난다. 스마트폰 저장 용량이 256GB, CPU 속도가 3.2GHz, 라디오 주파수가 100MHz, 인터넷 속도가 1Gbps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숫자만 나열되면 막막하지만, 그 뒤에 붙은 단위 덕분에 우리는 그 의미를 곧바로 이해한다.

 

돈을 예로 들어보자. ‘1000’이라는 숫자만 놓고 보면 의미가 없다. 그러나 “1천 원”이라고 말하면, 우리는 커피 한 잔 값 정도를 떠올린다. “1억 원”이라고 하면 아파트 전세자금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숫자만으로는 공허하지만, 단위가 붙으면 우리의 경험과 연결되며 비로소 현실감 있는 의미를 띤다.

 

단위는 숫자에 옷을 입히고, 세상 속 맥락을 부여하는 도구이다.

큰 단위의 세계 - 킬로(k)에서 테라(T)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쓰는 큰 숫자의 단위는 킬로(Kilo), 메가(Mega), 기가(Giga), 테라(Tera)이다. 컴퓨터 메모리 용량을 표현할 때 kByte, MByte, GByte, TByte 단위를 사용하고, 네트워크 속도는 kbps, Mbps, Gbps와 Tbps까지의 단위를 사용한다. CPU 클럭 속도나 오디오 주파수를 표현할 때는 kHz, MHz, GHz, THz 등의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숫자의 단위는 국제도량형총회에서 결정한다. 길이, 무게, 시간, 온도, 물질량 등의 도량형 표준인 국제단위계(약칭 SI)로 그 의미와 이름을 정한다. 1960년 총회에서 메가(M), 기가(G), 테라(T)를 크기의 단위로 정했고, 킬로(k)는 그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 킬로(kilo)는 1천(10³)을 의미하며, 그리스어로 '천'이라는 의미의 단어 khilioi에서 왔다. 그래서 1킬로바이트(kB)는 1,000 바이트, 1킬로그램은 1,000 그램이다.
  • 메가(mega)는 100만(10⁶)을 나타내며, “위대한, 거대한”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megas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메가바이트는 “백만 바이트”이며, 유사한 의미로 메가폰은 “큰 소리 기계”,  메가히트는 "대단히 큰 성공", 메가시티는 "거대한 도시", 메갈로돈은 "거대한 상어"를 뜻한다.
  • 기가(giga)는 10억(10⁹)을 나타내며 그리스어 gigas, “거인”에서 왔다.
  • 테라(tera)는 1조(10¹²)이며, 그리스어 teras, "거대한 것, 괴물"에서 유래했다. 반면에, 맥주 ‘테라’는 라틴어 terra(땅, 흙)에서 온 전혀 다른 어원을 가지고 있다.

한편, 컴퓨터에서 용량이나 성능을 표현할 때 실제로는 1000의 배수가 아닌 1024의 배수로 계산한다. 컴퓨터는 10이 아니라 2의 거듭제곱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즉, 1킬로바이트는 1000바이트가 아니라 1024바이트이고, 1메가바이트는 1024킬로바이트인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제단위계(SI)의 ‘1000’과 컴퓨터 세계의 ‘1024’가 충돌하면서 혼란이 생겼다. 이를 정리하기 위해 1999년 국제전기표준기구 IEC는 1024 단위를 별도로 “키비(kibi), 메비(mebi), 기비(gibi)”로 부르자고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KB, MB를 혼용하는 경우가 많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더 큰 세계로 - 페타(P)에서 요타(Y), 그 이후?

데이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기가와 테라만으로는 부족해다. 그래서 1975년에는 페타(P)와 엑사(E), 1992년에는 제타(Z)와 요타(Y) 같은 초대형 단위를 만들었다.

  • 페타(peta, 1000조, 10¹⁵)는 그리스어 접두사 penta(다섯)와 어원을 공유한다.
  • 엑사(exa, 100경, 10¹⁸)는 그리스어 hexa(여섯)에서 비롯되었다.
  • 제타(zeta, 10해, 10²¹)는 그리스어 숫자로 7을 의미하는 zeta에서 유래했다.
  • 요타(yota, 1자, 10²⁴)는 이탈리아어 'otto(8)'에서 유래했고, 숫자를 나타내는 가장 큰 단위였다.

오늘날 유튜브에는 하루에도 수 페타바이트의 영상이 올라오고, 구글이나 아마존 데이터센터는 이미 엑사바이트급 저장 장치를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는 제타(Z)와 요타(Y) 단위를 일상적으로 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2022년, 인류는 또다시 새로운 단위를 만들었다.

  • 로나(ronna, 10²⁷)와 쿼타(quetta, 10³⁰)라는 단위 이름을 추가했다. 이를 이용해서 지구 질량은 약 6 로나그램, 태양 질량은 약 2,000 쿼타그램이라고 표현할 수 있게되었다.

이제 인간은 단위라는 언어로 행성에서 항성까지 우주적인 크기를 잴 수 있게 되었다. 우주보다 큰 단위라는 질문은, 단위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인간이 우주를 상상하고 이해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단위의 세계 - 밀리(m)에서 피코(p)까지

큰 단위만큼이나 흥미로운 건 작은 단위다. CPU 클럭의 시간이나 메모리 탐색 시간을 나타낼 때 밀리초(ms), 마이크로초(μs), 나노초(ns), 피코초(ps) 단위를 사용한다. 큰 단위와 마찬가지로 1960년 국제도량형총회에 마이크로(μ), 나노(n), 피코(p)를 작은 크기의 단위로 정했고, 밀리(m)는 그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 밀리(milli, 10⁻³)는 라틴어 mille(천)에서 온 말이다. “천 개로 나눈 것”이라는 뜻이다. 
  • 마이크로(micro, 10⁻⁶)는 그리스어 mikros(작은)에서 왔다. 현미경(microscope)은 바로 “작은 것을 보는 기계”라는 뜻이다. 
  • 나노(nano, 10⁻⁹)는 그리스어 nanos(난쟁이, 아주 작은 것)에서 유래했다. 과학자들이 머리카락보다 훨씬 얇은 세포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이 나노 기술 덕분이다.
  • 피코(pico, 10⁻¹²)는 스페인어 pico(작은 조각, 부리)에서 온 말이다. 원자 몇 개를 나란히 세운 크기가 바로 피코 세계다. 

“5 나노(nm) 반도체 공정”이 다루는 것은 머리카락 한 올을 만 등분했을 때의 크기 정도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세계 위에 전자의 길을 수천 개 깔아 스마트폰을 구동한다는 뜻이다. 난쟁이의 세계가 컴퓨터를 지배한다는 우스갯소리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더 작은 세계 - 펨토(f)에서 욕토(y), 그 이후?

1975년에 펨토(f)와 아토(a), 1992년에는 젭토(z)와 욕토(y)의 초소형 단위가 표준으로 추가되었다. 

  • 펨토(femto, 10⁻¹⁵)는 15를 의미하는 덴마크어 femten에서 유래했다.
  • 아토(atto, 10⁻¹)는 18을 의미하는 덴마크어 atten에서 유래했다. 시간조차도 믿기 힘들 만큼 짧은 순간을 재는 데 쓰인다.

초고속 레이저나 전자의 이동은 펨토초 혹은 아토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며 “순간보다 더 짧은 순간”을 대상으로 한다. 1999년 분자의 움직임을 ‘슬로모션 영상처럼’ 관찰할 수 있는  펨토초 레이저 기술로 1999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젭토(zepto, 10⁻²¹)는 7을 의미하는 라틴어 septem에서 유래했다. 젭토그램(zg)은 매우 작은 분자의 질량을 표현한다.
  • 욕토(yocto, 10⁻²⁴)는 8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okto에서 유래했다. 욕토초(ys)sms 현재까지 측정된 가장 짧은 시간 단위로서, 양성자의 내부 구조를 연구할 때 사용된다.  

한편, 2022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 더 작은 세계의 초 미세 단위를 위해 론토(ronto, 10⁻²⁷)와 퀙토(quecto, 10⁻³⁰)를 추가했다. 이제 과학은 원자 내부, 심지어 전자의 순간적 이동까지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단위 - 인간이 만든 또 하나의 언어

단위는 단순한 계산의 편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상을 읽어내는 언어적 장치다. 우리는 킬로와 메가로 일상의 물건과 시간을 재고, 테라와 페타로 인류 문명의 데이터 흐름을 관리하며, 나노와 피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세계를 탐험한다. 그리고 이제는 쿼타와 퀘토로 행성과 원자의 크기까지 재기 시작했다.

 

단위는 망원경이자 현미경이다. 크고 먼 세계를 바라보는 동시에, 작은 세계를 확대하는 도구다. 그 이름 하나하나에는 인간의 상상력, 언어의 흔적, 문화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앞으로 더 큰 단위, 더 작은 단위가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언제나 세상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이 담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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