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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속 앨런 튜링의 천재성과 비극

IT조아(it-zowa) 2025. 1. 27. 01:04

정작 영화 스토리에서는 이미테이션 게임 이야기가 없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포스터 (출처 : 나무위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천재 수학자이자 암호학자였던 앨런 튜링(Alan Turing)의 비범한 삶과 그가 남긴 업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영화 속에서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잠수함에서 사용하는 복잡한 암호 시스템인 에니그마(Enigma)를 해독하기 위해 고용된다. 독일군 잠수함 함대인 유보트의 공격으로 단시 연합군의 배들은 바다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유보트가 통신하는 암호 시스템인 에니그마를 풀 수만 있다면 잠수함은 오히려 독 안의 든 쥐 형국이 될 수 있다. 이에 연합국의 여러 나라에서 암호를 해독하려 했으나, 에니그마는 매일 암호가 바뀌어 해독이 거의 불가능했다. 튜링은 이에 굴하지 않고 최초의 전자 기계식 컴퓨터콜로서스(Colossus)라는 기계를 설계하여 해독을 시도한다. 결국, 그는 암호 해독에 성공하며 2차 대전의 흐름을 연합국이 우위를 차지하게 하는 데 매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영화속에서 콜로서스 컴퓨터의 작동 모습

 

영화 속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대사가 잠깐 등장한다.

나는 누구입니까? 기계입니까? 사람입니까?

 

앨런 튜링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난 뒤 지금 한 이야기는 기계가 한 것인가 사람이 한 것인가 묻는다. 하지만 영화는 제목으로 사용된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깊이 다루지 않고, 간단한 자막 설명만을 제공한다. 

영화속에서 '이미테이션 게임'을 설명하는 장면

 

그렇다면 '이미테이션 게임'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왜 이것이 인공지능 연구에서 중요한 개념일까? 이러한 개념을 제시한 앨런 튜링의 업적과 그의 생애를 돌아보자


튜링 테스트 : 인공지능 연구의 시작점

영화 제목이기도 한 '이미테이션 게임'을 응용하여 앨런 튜링은 '튜링 테스트(Turing Test)'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1950년 당시에는 "기계가 정말로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획기적이었다. 튜링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튜링 테스트로 알려진 실험을 고안했다. 이 테스트에서는 사람이 기계와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가 인간과의 대화인지 기계와의 대화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방식이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거실에 있는 질문자가 종이에 적힌 질문들을 통해 서로 다른 방에 있는 남녀 중 누가 여성인지를 맞추는 게임이다. 튜링 테스트는 이 아이디어를 응용한 것으로, 남자와 여자 대신 컴퓨터와 사람이 아래 그림에서와 같이 분리된 방에서 질 문자와 대화를 나눈다. 질문자가 컴퓨터와 인간의 반응을 구별할 수 없다면 컴퓨터가 지능이 있다고 판단하자는 개념이다. 

튜링 테스트의 개념 (출처 : © IT기술의 이해)

 

튜링 테스트가 제시되었던 당시는 인공지능 연구가 새롭게 전개되려는 초창기였다. 따라서 튜링의 이 아이디어는 인공지능 연구의 시발점이 되면서,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흉내 내고 이를 통해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지금 우리가 AI와 대화하거나, 챗봇과 소통할 수 있는 기술의 기초가 이 실험에서 시작된 셈이다. 이런 질문들은 여전히 AI 연구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튜링의 아이디어는 단순히 기계와 인간의 지능 비교에 그치지 않고, 기계의 윤리성과 AI 연구의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현대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전자 기계식 컴퓨터의 등장 : 콜로서스 컴퓨터

콜로서스 컴퓨터 (출처 : 위키백과)

 

튜링과 그의 동료들이 개발한 콜로서스(Colossus) 컴퓨터는 그 시절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속도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었다. 콜로서스는 다양한 전자 회로와 복잡한 기계적 장치를 통해 엄청난 양의 암호 데이터를 분석하고, 독일군의 통신 암호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컴퓨터는 '튜링 머신(Turing Machine)'이라고 불리는 현대적인 프로그래밍 개념을 처음으로 실현한 기계식 컴퓨터이기도 하다.  튜링 머신이라는 계산기 개념 자체가 사람들에게는 혁신이었고, 이를 통해 계산을 자동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술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특히 콜로서스가 개발된 시점은 단순한 기술 발달을 넘어선 의미가 있었다. 전쟁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살고 하는 상황에서 이 기술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중요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은 사실 이런 콜로서스 같은 기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앨런 튜링의 비극적인 삶, 그리고 마지막 ‘사과’

앨런 튜링 (출처 : 나무위키)

 

튜링의 삶이 회려한 업적만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니었다는 점도 영화가 주는 큰 메시지였다. 천재적인 업적에도 불구하고 튜링은 당시 사회의 편견과 차별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았다. 튜링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당시 영국 법률에 의해 화학적 거세를 당해야만 했고, 이로 인해 큰 고통을 겪었다. 2차 대전 종전 후에는 전쟁 영웅으로 대접을 받기는커녕 영국의 정보국으로부터 많은 견제와 제약을 받으며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갔다. 결국 그는 독이 든 사과를 한입 베어 먹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애플사 로고와 앨런 튜링의 연관성?

애플사 로고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애플사(Apple Inc.)의 로고에 얽힌 이야기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존경하는 튜링을 기리기 위해 애플사 로고를 한입 베어 먹은 사과 모양으로 디자인됐다는 소문이 있는데, 애플사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가 앨런 튜링을 매우 존경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 로고를 기억하고 있다. 이 사과는 그의 비극적인 삶을 떠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그의 업적과 그가 남긴 유산을 되새기는 계기가 된다.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 앨런 튜링의 유산

튜링은 오늘날 현대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최초의 계산 모델인 '튜링 머신'의 개념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 했으며, 인공지능 연구의 시발점이 된 '튜링 테스트' 이론을 제시하였다. 오늘날의 컴퓨터에서 계산을 처리하는 방식은 튜링이 제시한 방식대로 구현되어 아직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그의 이름을 딴 '튜링상(Turing Award)'은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 되었다. 컴퓨터 분야에서 가장 저명한 학술단체인 ACM(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에서 1966년부터 매년 컴퓨터 과학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을 선정하여 튜링상을 수여하고 있다. 컴퓨터 분야의 노벨상이라고 까지 불리는 이상은 도널드 크누스, 팀 버너스리, 존 매카시 같은 전설적인 인물들이 매년 이어서 수상 받고 있다.

🕜ACM 튜링상 주요 수상자 (발췌)

수상자
업적
1966
앨런 펄리스
고급 프로그래밍 기법, 컴파일러 설계
1969
마빈 민스키
1971
1974
알고리즘 분석, TeX
1981
에드거 F. 커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1983
켄 톰프슨 / 데니스 리치
유닉스 운영 체제 개발, C언어
1988
이반 서덜랜드
컴퓨터 그래픽스
1997
대화형 컴퓨팅
2003
앨런 케이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Smalltalk
2016
www 의 창안
2018
2022

 

튜링의 유산은 그저 역사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와 AI 기술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의 발명과 아이디어는 오늘날에도 컴퓨터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으며, 이 분야에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튜링의 천재성과 도전 정신을 계속해서 이어받고 있다.

 

결국 튜링의 삶과 업적은 인류가 기술을 통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천재의 비극적 일생이 아니라, 컴퓨터 과학과 AI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해주는 소중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