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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 기업 1호는? 당근 넷스케이프!

IT조아(it-zowa) 2025. 2. 24. 07:38

닷컴 기업이란? 

인터넷 도메인 주소에서 보통 기업체들은 '.com'으로 끝나는 도메인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국가 도메인을 포함하여 '.co.kr'이나 '.co.jp'로 사용하기도 한다.) 웹환경에서 활발히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인터넷 관련 기업들은 당연히 인터넷 주소를 명함처럼 사용하고 있으며, 도메인 주소가 '.com'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 들 기업들은 닷컴(Dot-com) 기업이라 부르고 있다.

닷컴 (출처: 위키백과)

 

즉, 닷컴 기업은 인터넷과 관련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업으로, 주로 웹 기반의 전자상거래, 포털 서비스, 소셜 네트워크, 클라우드 컴퓨팅 등을 제공한다. 1990년대 웹의 폭발적인 보급과 인터넷 관련 산업의 발전으로 인하여 이러한 닷컴기업들은 크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2000년을 전후하여 닷컴버블(Dot-com Bubble) 이라는 경제적 사건이 발생했다. 닷컴 버블은 1990년대 인터넷 기업들이 크게 성장하면서 과열투자를 하고, 결국 기업가치에 비하여 과장된 거품이 붕괴한 현상을 말한다. 인터넷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닷컴기업의 주가는 폭등했지만, 결국 수익성이 낮은 기업들의 거품이 터지면서 주식시장이 붕괴된 사건이다.

닷컴버블의 붕괴 (출처 : https://www.smsfadviser.com)

 

이러한 닷컴기업에 관련하여 한가지 궁금한 점은 과연 "어느 회사가 1호 닷컴회사였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한번 더 생각해 보면 답이 매우 간단하다. 1994년 웹컨소시엄(W3C)이 시작되어 인터넷이 전 세계에 폭발적으로 보급될 때 가장 큰 기여를 한 기술이 바로 그래픽 기반의 웹브라우저였다. 바로 웹브라우저를 개발하여 전 세계 사용자에게 보급한 넷스케이프(Netscape)는 W3C와 함께 인터넷 시대의 시작을 열었던 중요한 기업이었다. 당연히 넷스케이프는 '.com' 도메인을 사용한 최초의 기업이며, 닷컴기업으로서 주식시장에 최초로 상장되었다. 

닷컴기업 1호인 넷스케이프의 흥망성쇄를 알아보자


웹브라우저의 시작

1989년, 팀버너스리(Tim Berners-Lee)는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란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했다. 이 아이디어는 인터넷 사용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며 전 세계 정보 공유의 토대를 마련했다. 월드와이드웹의 개념을 전 세계 사용자들에게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면 웹브라우저가 필요했다. 이때, 마크 앤드리센(Marc Andreessen)일리노이 대학 NCSA (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s, 슈퍼컴퓨팅 응용 연구센터)에서 최초의 웹 브라우저인 모자이크(Mosaic)를 개발하였다. 일리노이 대학교 NCSA 센터 앞에 가보면 웹브라우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모자이크 브라우저와 기념비 (출처: 일리노이 대학)

 

그러나 1993년, 팀 내부 갈등과 배신감으로 인해 앤드리센은 NCSA를 떠나 모자익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새로운 브라우저인 모질라(Moziller)를 개발했다. 안드레센이 얼마나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모질라'라는 이름이 사실은 '모자이크 킬러(Mosaic Killer)'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넷스케이프의 시작과 대성공

 

1994년에는 웹컨소시엄(W3C)이 발족되었고, 같은 해 앤드리센은 짐 클라크(Jim Clark)와 함께 넷스케이프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여 기업을 창업하고 웹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를 배포했다. 이 브라우저는 불과 3년 만에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용하게 될 만큼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는 웹의 성공과 대중화에 있어 일등 공신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웹은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통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발전했다. 당시 PC 역시 DOS 기반에서 윈도우 기반으로 혁신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으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웹은 단순한 명령어 입력 대신 아이콘, 메뉴, 버튼 등 그래픽 요소의 클릭을 통해 사용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로 인해 인터넷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도구로 자리 잡게 되었다.

 

넷스케이프는 웹의 대중화와 함께 주식 시장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1995년 8월 9일, 넷스케이프는 미국주식시장인 나스닥에 상장되며 닷컴 회사 중 최초로 상장을 이뤄냈다. 당시 공모가는 주당 14달러로 책정되었지만, 기업 공개 직전 28달러로 상향 조정되었다. 상장 첫날, 넷스케이프의 주가는 한때 75달러까지 치솟으며 폭발적인 관심을 증명했다. 이는 닷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익스플로러의 불공정 경쟁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MS)는 뒤늦게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를 출시하며 웹브라우저 시장에 뛰어들었다. MS는 인터넷의 발전가능성을 과소평가하여 웹브라우저 개발에 한발 늦었던 것이다. 초창기 익스플로러는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에 기능면에서 경쟁상대가 전혀 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에 MS는 익스플로러를 윈도우에 포함시키는 '끼워팔기' 전략을 통해 익스플로러 보급에 힘을 기울였다. 내비게이터는 어느 정도의 가격을 지불해야 하지만 익스플로러는 무료이며 윈도우에 이미 설치되어 있어서 점차 시장 점유율을 높여갔다. 그사이 익스플로러의 기능도 지속된 기술 개발로 경쟁력을 확보하였고 특히 윈도우의 시장 장악력으로 인하여 MS는 넷스케이프를 시장에서 완전히 제압하게 되었다.

넷스케이프와 익스플로러 브라우저 (출처: 나무위키)

 

넷스케이프는 MS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불공정행위로 인한 반독점피해 소송을 진행하였다. MS가 윈도우의 시장장악력을 이용하여 끼워팔기를 한다는 사실이 시장독점에 따른 불공정행위인 것이다. 결국 MS가 독점 행위로 소송에서 패소했지만, 소송이 끝나기 전에 넷스케이프는 이미 시장에서 크게 밀려난 상황으로 이미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는 시장 독점이 가져올 수 있는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

 

익스플로러가 넷스케이프와 한창 경쟁할 때인 1995년부터 1999년까지 매년 익스플로러의 개정판을 출시하며 기술 개선을 이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2001년 넷스케이프가 몰락한 이후에는 경쟁자가 없으므로 10년간 개정판을 2번만 발표하는 등 기술 개선에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2011년부터는 매년 다시 개정판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새로운 웹브라우저인 파이어폭스(Firefox)가 유럽시장에서 익스플로러를 앞서갔고, 이후에는 크롬(Chrome)이 완전히 선두로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익스플로러가 시장장악에 성공하여 10년간 안주하는 사이 다른 브라우저들이 출현하였고, 익스플로러는 그 사이에 경쟁력을 이미 잃어버려 결국 2013년 최종 버전 11을 발표하고 새로운 개발을 포기하게 된다. 이 사건은 시장독점이 심한 경우 기술 경쟁에 나태해질 수 있으며 그 피해는 시장 제품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시장점유율의 변화와 버전 발표 시점 (출처 : Wikipedia)


표준의 중요성

마이크로소프트는 단순히 무료 배포와 끼워팔기 전략 외에도 비표준 기술을 활용한 차별화 전략으로도 시장을 장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ActiveXJScript다. ActiveX는 C/C++언어나 베이직 등 다른 언어로 작성된 프로그램을 웹브라우저에서 플러그인 형태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편리한 기술로서,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사용하는 특화된 기술이다.  그러나 ActiveX가 다양한 기능의 플러그인을 추가하는 데 편리했지만, 표준화되지 않은 방식이어서 다른 브라우저와는 전혀 호환이 되지 않았다.

 

자바스크립트 역시 표준으로 작성되어 있는 EcmaScript 버전 대신 JScript라는 MS 독자적인 버전으로 변형해 사용하며 개발자들을 MS 생태계에 묶어두는 전략을 취했다. JScripts는 기존의 자바스크립에 매우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능 몇 가지를 추가한 것이다. 사용자는 그 편리한 기능에 심취되어 사용하다 보면 다른 브라우저에서 호환성이 떨어져 익스플로러만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ActiveX는 국내에서 은행과 보안 프로그램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사용자는 ActiveX를 설치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보안 문제를 심화시켰다. ActiveX는 C 언어로 구현되었기 때문에, 개발자들이 강력하고 정밀한 제어를 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메모리 누수와 같은 치명적인 보안 취약점을 초래하기도 했다.

 

ActiveX를 둘러싼 논란이 커졌을 때, MS에서는 ActiveX의 사용을 강요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회피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사용자는 불편과 보안 문제를 겪으면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특히 한국에서는 ActiveX가 오랜 기간 인터넷 서비스의 장애물로 작용했다. 급기야는 정부가 나서서 국내 모든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등 주요 사이트에서 2020년까지 ActiveX를 모두 제거하고 대체 보안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는 비표준 기술에 의존하는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편리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사용자와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ActiveX (출처: 나무위키)

 


내비게이터의 소스는 살아있다: 모질라 재단

1999년, 넷스케이프는 AOL에 인수되며 독립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마감했다. 하지만 넷스케이프의 개발자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모질라 커뮤니티를 결성해 넷스케이프의 소스코드를 공개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보수와 관리를 이어갔다. 이렇게 탄생한 모질라 재단은 오픈소스 정신을 바탕으로 활동하며, 넷스케이프의 후속 브라우저인 파이어폭스를 개발했다. 파이어폭스는 초기에는 큰 주목을 받으며 브라우저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결국, 파이어폭스도 시간이 지나면서 크롬 등 경쟁 브라우저에 밀려 시장 점유율을 크게 잃게 되었다.

파이어폭스 로고의 변천 (출처 : 나무위키)

 

흥미로운 점은 모질라 커뮤니티가 주로 도네이션을 통해 운영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용자의 자발적인 참여와 지원으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독특했다. 이러한 운영 방식은 비영리 단체로서의 모질라 재단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상업적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소프트웨어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 넷스케이프의 몰락은 안타까운 역사로 남았지만, 모질라 커뮤니티는 그 유산을 이어받아 오픈소스의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모질라 로고 (출처: 위키백과)


넷스케이프는 왜 몰락했는가?

넷스케이프는 1994년 최초의 상용 웹브라우저를 배포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인터넷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공격적인 전략 앞에서 넷스케이프는 점차 경쟁력을 잃었다. MS는 익스플로러를 윈도우 운영체제와 결합해 무료로 배포하면서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시장에서 밀어냈다. 넷스케이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 행태를 비판하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전략적 대안의 부족과 미숙한 대응으로 인해 1998년 결국 시장에서 퇴출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점적 지위를 활용한 강력한 전략으로 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했으며, 빌 게이츠는 위기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과감한 결정을 통해 전세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반면, 넷스케이프는 비윤리적 행태를 비난하며 맞섰지만, 효과적인 전략과 대응이 부족해 자멸의 길을 걸었다. 이 사건은 기업의 위기 대응 태도가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넷스케이프가 실패한 이유는 단순히 마이크로소프트의 공격적인 전략 때문만은 아니었다.  넷스케이프 역시 야후처럼 포털 서비스로 전환하거나 구글처럼 검색 엔진 기업으로 변신하는 전략적 선택을 하지 못했다. 결국, 브라우저 기술에만 집중하고, 다른 포괄적인 혁신이나 차별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효과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점은 넷스케이프의 가장 큰 패착 중 하나였다.

익스플로러의 현재

아이러니하게도 넷스케이프를 몰락시킨 주범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역시 2022년 6월 15일,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이 날, 마이크로소프트는 Internet Explorer 11 데스크톱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Microsoft Edge를 기본 브라우저로 전환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2010년대 들어서 파이어폭스에 밀리다가, 이후에는 크롬에게 완전히 시장 경쟁력을 잃었다. 결국 2013년 익스플로러 버전 11을 끝으로 더 이상 개발을 하지 않고, 2022년에 지원마저 종료한 것이다.

 

익스플로러의 경쟁력이 약화된데에는 비표준화 전략이 가장 큰 원인으로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이 브라우저의 호환성이었다. 같은 웹사이트를 파이어폭스, 크롬, 사파리 등 다른 브라우저에서는 비슷하게 보이는데 익스플로러는 다르게 보이는 요소가 많았다. 또 반대로 익스플로러에만 지원하는 기능은 다른 브라우저에서 볼 수 없으므로 PC와 모바일 기기간에 호환성에 많은 불편을 끼쳤다. 점차 사용자들은 표준 호환성이 높은 브라우저를 선택하게 되어 2010년대 들어서 익스플로러의 입지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데스크탑 웹브라우저 시장 점유율의 변화, 2009년~2025년 (출처 : StatCounter)

 

결과적으로 넷스케이프와 익스플로러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기술 시장에서 혁신과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교훈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