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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삐삐로 사귀던 7942~

IT조아(it-zowa) 2025. 4. 7. 21:21

무선호출기와 시티폰으로 연애하던 90년대 X세대 

<응답하라 1994>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는 나정(고아라)이 누군가의 삐삐에 메시지를 남기고, 상대방이 공중전화로 회신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삐삐는 발신자의 번호만 표시되기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모른 채 바로 전화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숫자 암호를 활용해 감정을 전달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1004'는 '천사'라는 뜻으로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자주 쓰였다. 이런 방식으로 삐삐는 단순한 호출 기기를 넘어 감정을 주고받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응답하라 1994 (출처: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는 백이진(남주혁)과 나희도(김태리)가 공중전화로 녹음된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해외에 있는 이진이 직접 통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두 사람은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나중에 와서 재생하며 감정을 나눈다. 상대방이 거기에 없는데도 녹음된 목소리를 들으며 그리움을 느끼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삐삐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시티폰과 공중전화는 물리적 거리를 넘어 마음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출처: tvN)

 

휴대전화가 널리 사용되기 전

9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던 삐삐와 시티폰에 대해서 알아보자


90년대 국민 메신저 삐삐의 모든 것

삐삐의 사용법과 작동 원리

삐삐는 무선호출기 또는 무선호출단말기로, 무선 신호를 통해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기였다. 1980~90년대에는 필수템이었지만,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점점 자취를 감췄다.

 

삐삐의 작동 원리는 단순했다. 발신자가 전화를 걸면, 기지국이 신호를 전송했고, 삐삐가 그 신호를 받아 화면에 번호를 표시했다.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공중전화로 다시 전화를 걸어야 했다. 처음에는 숫자만 표시되었지만, 이후에는 한글 메시지 기능도 추가되면서 더 많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삐삐 (출처: 그린포스트코리아)

1980년대 : 삐삐의 등장

  • 대한민국에서 삐삐 서비스가 처음 시작된 건 1983년이었다. 초창기에는 병원, 기업 등에서 필수적인 업무용 도구로 자리 잡았고, 012나 015 같은 특정 번호가 무선호출 서비스 가입자 식별번호로 지정됐다.

1990년대 : 삐삐의 전성기

  • 1990년대 중반에는 대한민국에서 무려 1,500만 명 이상이 삐삐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번호만 표시됐지만, 이후 한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면서 더 큰 인기를 끌었다. 청소년과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내 삐삐 번호 알려줘"가 인사처럼 사용될 정도였다.

1997년 이후 : 삐삐의 쇠퇴

  • 1997년 이후 휴대전화가 점점 보급되면서 삐삐 사용자는 급감했다. 이동통신사의 문자메시지(SMS)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삐삐의 필요성이 사라졌고, 결국 2000년대 초반부터 대부분의 통신사들이 삐삐 서비스를 종료했다.

2010년대 이후 : 일부 분야에서만 살아남은 삐삐

  • 삐삐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병원, 소방서, 군대처럼 즉각적인 응답이 필요하지 않은 환경에서는 삐삐가 여전히 유용했다. 2013년에는 서울이동통신에서 015 인터넷 삐삐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2014년에는 012 번호가 사물인터넷(IoT) 용도로 다시 사용되면서 삐삐의 흔적이 일부 남아있다.

삐삐 광고 포스터 (출처: 아이뉴스)


시티폰의 정체

삐삐를 보완한 시티폰의 등장

1990년대 후반, 삐삐와 휴대전화 사이에서 시티폰이라는 무선전화 서비스가 등장했다. 당시 휴대전화 요금이 비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시티폰이 대학생과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삐삐처럼 공중전화를 찾아 전화를 걸 필요 없이, 기지국 반경 내에서 바로 통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휴대전화와는 다르게 작동했다. 시티폰은 무선랜 기반의 이동통신 서비스로 특정 지역(기지국 반경 내)에서만 통화가 가능했다. 또한, 이동 중에 다른 기지국으로 전환되지 않아서 통화 중에 이동하면 전화가 끊겼다. 대신 이동통신망을 사용하는 휴대전화보다 요금이 저렴했다.

시티폰 광고 (출처: 나무위키)

1997년 : 시티폰 서비스 개시

  • 1997년, 한국통신(현 KT)과 신세기통신(현 SK텔레콤)이 시티폰 서비스를 시작했다. 휴대전화보다 저렴한 요금 덕분에 학생과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기지국 반경 내에서만 통화 가능했지만 삐삐보다는 훨씬 편리했다.  

1999년 : 가입자 110만 명 돌파

  • 시티폰은 서울, 부산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기지국을 확장하며 더욱 성장했다. 특히 ‘학생폰’으로 불리며 10~20대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휴대전화가 부담스러웠던 젊은 층에게 시티폰은 가성비 좋은 대안이었다.

2000년대 : 휴대전화의 급성장과 시티폰의 몰락

  •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휴대전화 요금이 점점 저렴해졌고, 이동 중에도 끊기지 않는 휴대전화가 대세가 되면서 시티폰 사용자는 급감했다. 결국 시티폰은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잊혀 갔다.

2002년 : 시티폰 서비스 종료

  • 이동통신망 발전과 함께 시티폰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2002년 12월 31일을 끝으로 서비스가 공식 종료됐다. 짧지만 강렬했던 시티폰의 시대가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전화 사용 문화의 변화: 공중전화에서 스마트폰까지

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전화 사용 방식과 예절도 크게 변화해 왔다. 시대별로 전화 문화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자.

공중전화 시대 : 동전과 기다림의 미학

과거에는 공중전화가 필수적인 연락 수단이었다. 통화 시간이 길어지면 뒷사람을 위해 짧게 끝내는 것이 기본적인 예절이었다. 긴 통화를 해야 할 경우에는 동전을 충분히 준비하거나 전화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친구나 연인과의 약속 장소에서 "나 여기 왔어!"라고 공중전화를 통해 연락하는 것이 흔한 풍경이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정해진 장소에서 서로를 기다리며 설렘을 느꼈다.

삐삐 시대 : 숫자로 감정을 전하는 문화

삐삐가 등장하면서 연락 방식이 조금 더 편리해졌다. 삐삐 사용자는 상대방의 호출을 받고 근처 공중전화로 회신하는 방식으로 소통했다. 간단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숫자 암호를 활용하는 문화도 생겨났다. 예를 들어 "1004"는 천사, "486"은 사랑해, "8282"는 빨리빨리를 의미했다. 친구나 연인끼리 삐삐 번호를 공유하는 것은 친밀함의 상징이었다. "내 삐삐 번호 알려줄게"라는 말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이었다.

시티폰 시대 : 삐삐와 휴대전화의 중간 단계

시티폰은 무선전화와 비슷했지만, 기지국 반경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제한이 있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연락해야 했고, 이동 중에는 통화가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내 시티폰 터지는 곳에서 전화할게"라는 말이 흔하게 쓰였으며, 신호가 잘 잡히는 특정 장소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동전화 시대 : 개인 통신의 혁명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의 통신 방식에 혁신이 일어났다. 초기에는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점차 매너 모드 사용이 기본적인 예절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휴대전화 번호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011, 016, 019 번호 경쟁"이 벌어졌고, 번호에 따라 이미지가 다르게 형성되기도 했다. 또한, 문자메시지(SMS)가 등장하면서 삐삐를 대체할 수 있는 더욱 편리한 소통 방법이 생겨났다.


X세대의 문화의 시작과 배경

삐삐 숫자 암호 & 의미

삐삐 암호집(출처: KBS)

  • 0024 : 영원히 사랑해 (언제까지나 변치 않는 사랑)
  • 0090 : 가는 중이야! (oo~ go)
  • 0179 : 영원한 친구 (우정 변치 말자!)
  • 0404 : 영원히 사랑해~(영사영사)
  • 100 : 돌아와(back)
  • 100024 : 많이 사랑해
  • 10288 : 열이 펄펄(아파)
  • 5555555 : 호~~~ (10288의 답장, 걱정되거나 위로하는 느낌)
  • 1052 : (LOVE, 진심 담긴 고백)
  • 108 : 고민 중.. (108 번뇌)
  • 982 : good bye (=882882 빠많이)
  • 1212 : 사랑해 사랑해 (반복해서 고백하는 느낌)
  • 2525 : 웃어 웃어 (미소 짓자는 의미)
  • 7777 : 칠칠치 못해 (실수했을 때, 장난스럽게)
  • 1004 : 천사 (착한 사람을 부를 때)
  • 8282 : 빨리빨리 (서두르라는 의미)
  • 7179 : 친한 친구 (오랫동안 함께한 친구 의미)
  • 4040 : 보고 싶어 (상대방을 그리워할 때)
  • 0909 : 오래오래 (변치 말자는 의미)
  • 5252 : 뭐 해 뭐 해? (상대방의 상황을 물을 때) 
  • 17317071: 너를 사랑해(뒤집으면 I LOVE U)
  • 38317: 사랑해 (뒤집으면 LIEBE, 독일어로 사랑해)
    사랑의 의미를 담은 숫자 암호. 뒤집으면 알파벳이 된다.

X세대의 숫자 암호 문화, 지금도 남아 있다

X세대가 즐기던 숫자 암호 문화는 삐삐가 사라진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 SNS 해시태그: #1212(빨리 전화해), #8282(빨리빨리) 같은 숫자 표현이 활용된다.
  • 비밀번호 및 닉네임: 486(사랑해) 같은 숫자를 비밀번호에 넣는 경우가 많다.
  • 메시지 표현 방식: "ㅋㅋ" 대신 "ㅎㅎㅎ" 같은 반복 표현이 많이 사용된다.

이처럼 삐삐가 사라졌어도 숫자로 감정을 표현하는 문화는 새로운 방식으로 계속 변형되며 살아남고 있다.


삐삐와 시티폰의 몰락, 이동전화로의 전환

삐삐는 단방향 소통 방식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메시지를 받으면 반드시 공중전화를 찾아 회신해야 했기 때문에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웠다. 시티폰 역시 이동 중에는 통화가 불가능해 불편함이 많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휴대전화 요금이 점점 낮아지면서 삐삐와 시티폰은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실시간 통화가 가능하고 문자 기능까지 갖춘 휴대전화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휴대전화로 전환했다. 2004년에는 010 번호 통합 정책이 시행되면서, 기존의 011, 016, 019 등의 번호가 010으로 통합되었다. 이와 함께 삐삐 서비스도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010 번호 통합 (출처: SBS)


전화 예절의 변화

전화 사용 방식이 변화하면서, 통화 예절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 공중전화 시대 : 뒷사람을 위해 짧게 통화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절이었다.
  • 삐삐 시대 : 상대방이 공중전화를 찾을 시간을 고려해 너무 자주 호출하지 않는 것이 매너였다.
  • 시티폰 시대 : 통화 가능 지역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미리 연락하는 것이 필수였다.
  • 휴대전화 시대 : 공공장소에서는 진동 모드를 사용하고, 전화를 하기 전에는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먼저 연락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예절이 되었다.
전화 문화는 계속 변화하지만, 소통의 본질은 그대로

 

과거 공중전화에서 삐삐, 시티폰을 거쳐 휴대전화와 스마트폰까지, 통신 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의 생활을 크게 변화시켰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은 언제나 더 쉽고 빠르게 소통하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지만, 과거 공중전화 앞에서 설레며 기다리던 감정, 삐삐 숫자 암호로 몰래 감정을 전하던 감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시대가 변해도, 소통의 방식은 계속해서 우리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삐삐는 일반적인 일상에서는 사라졌지만, 응급 구조나 병원 등 특정 분야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소통 방식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계속 변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