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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버깅의 탄생, 그레이스 호퍼 이야기

오늘날 프로그래머들은 오류를 ‘버그(bug)’라 부르고, 그것을 고치는 일을 ‘디버깅(debugging)’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단어가 정말 벌레(bug)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알고 있었는가? 더 흥미로운 건, 그 일화 뒤에는 한 여성 과학자의 업적이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단순히 버그를 잡은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도록 만든 개척자, 프로그래밍 언어와 컴퓨터 과학의 토대를 세운 인물이었다.수학과 호기심으로 세상을 해석한 소녀1906년, 뉴욕에서 태어난 한 소녀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과학에 깊이 빠져들었다. 호기심은 늘 그녀의 무기였고, 그 열정은 결국 예일대학교 수학 박사 학위로 이어졌다. 당시 여성으로서 수학 박사를 받는 일은 극히 드물었는데, 그녀는 예일 역사상 ..

에니악 개발의 뒤에 숨겨진 6명의 영웅들

세계 최초의 전자식 범용 컴퓨터, 에니악(ENIAC, 1946). 그 유명한 흑백 사진 속에는 거대한 기계 옆에 서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늘 함께 등장한다. 그들은 누구였을까? 단순히 비서이거나, 홍보를 위한 모델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여성들은 실제로 기계를 조작하며 코드를 연결했던, 에니악 개발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인물들이다. 하드웨어를 설계한 애커트와 모클리의 이름은 신문마다 대서특필되었지만, 시연 프로그램을 만든 여섯 명의 여성 프로그래머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의 공로는 무려 40년 동안 세상에서 지워져 있었다. 그 긴 침묵을 깨고, 역사의 장막 속에서 그녀들을 불러낸 사람은 컴퓨터 역사 연구자 캐시 클라이먼(Kathy Kleiman)이었다. 그녀는 끈질기게 자료를 추적하..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는 여성이었다, 에이다 러브레이스

19세기 영국, 컴퓨터라는 단어조차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시절. 그 시대에 한 여성은 이미 기계가 단순 계산을 넘어 음악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꿈꾸었다. 그녀의 이름은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 세상이 아직 컴퓨터의 형태조차 알지 못할 때, 최초의 프로그래밍을 설계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놀랍게도,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가 다름 아닌 여성이라는 점을 말해준다.수학으로 길을 연 소녀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 는 1815년, 유명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 경의 딸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는 태어난 지 한 달 된 딸을 두고 집을 떠났다. 그 시절 영국 법은 이혼 시 양육권을 아버지에게 부여했지만, 바이런은 전혀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에이다는..

[아는척 07] 초기 여성 프로그래머들의 여정

오늘날 프로그래밍은 공학의 최전선이자 ‘남성의 직업’으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역사의 첫 장을 펼쳐보면 이야기는 다르다. ‘프로그래밍’이라는 개념을 가장 먼저 개발했던 사람은 바로 여성, 에이다 러브레이스였다. 이후 컴퓨터가 막 태동하던 시절,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인 에니악의 거대한 회로 앞에서 기계를 움직였던 이들 역시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은 대중의 기억에서 인식되지 않은 채로, 오랫동안 “아는 사람만 아는 전설”로만 남아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학문에 대한 정진으로 유리천장을 깨부순 위대한 여성 프로그래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려 한다. 러브레이스에서 그레이스 호퍼, 그리고 수십 년 동안 남성 중심으로 수여된 튜링상에서 드물게 이름을 올린 여성 과학자들까지. 더 ..

불편함이 만든 혁신, USB의 인간학

기술의 역사는 종종 속도와 용량, 즉 숫자의 발전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때로는 그보다 더 사소한, 그러나 훨씬 인간적인 감정이 기술을 움직인다. 그 이름은 불편함이다. 책상 밑과 컴퓨터 뒤편의 케이블 지옥을 해방시키고, 꽂을 때마다 50% 확률 게임을 벌이게 만들었던 그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20년 넘게 진화해 온 기술. 바로 USB(Universal Serial Bus) 이야기다.혼돈의 시대 ― 케이블의 바벨탑USB가 등장하기 전인 1990년대 초, 컴퓨터의 뒷면은 언어가 뒤섞인 도시처럼 혼돈 그 자체였다. 마우스, 프린터, 키보드, 모뎀, 조이스틱이 모두 각자의 문법을 가지고 있었다. 마우스를 위한 길고 얇은 직렬 포트(Serial Port), 프린터를 위한 25개의 핀이 빽빽한 병렬 포트(Para..

베토벤 교향곡이 정한 CD의 용량

오늘날 우리는 손끝 하나로 수천만 곡의 음악을 불러온다. 스마트폰 속 스트리밍 세상에서, 한때 책장 한 줄을 가득 채웠던 은색 원반, CD(Compact Disc)는 이제 잊힌 유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작고 반짝이는 원반 안에는 19세기의 예술과 20세기의 기술이 손을 잡은 순간이 숨어 있다. 기술자와 예술가의 논쟁1980년대 초, 필립스(Philips)와 소니(Sony)는 아날로그 LP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 새로운 디지털 오디오 매체인 Audio CD를 만들고 있었다. 디스크의 지름과 재생 시간, 즉 “얼마나 담을 수 있는가”가 마지막 과제였다. 필립스는 실용적인 기준을 제시했다.“11.5cm 크기에 60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소니의 회장이자 클래식 애호가 오가 노리오(No..

기억을 잃은 인간, 그리고 기억을 닮은 기계

영화〈메멘토〉(2000)를 본 사람이라면 잊기 힘든 장면이 있다. 아내를 잃은 주인공 레너드는 범인을 쫓지만, 그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10분이면 기억이 사라지는 '단기 기억 상실증'. 그는 망가진 기억을 대신할 외부 장치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 잊지 말아야 할 단서는 몸에 문신으로 새기고, 순간의 기억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남기며, 그 위에 짧은 메모를 적어 둔다. 그의 몸과 주머니 속 사진들은 마치 부서진 뇌의 하드디스크처럼 기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억상실증 환자의 몸속에는 인간의 기억 구조와 컴퓨터의 메모리 구조를 동시에 읽을 수 있는 단서가 숨어 있다. 레너드의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따로 작동하듯, 컴퓨터 역시 빠른 기억과 오래 남는 기억을 나누어 저장한다.인간의 기억 ― 세 ..

두뇌를 키운 예언 무어의 법칙, 아직 유효한가?

인류의 역사를 바꾼 혁명 뒤에는 언제나 시대를 이끈 강력한 믿음이나 법칙이 있었다.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디지털 혁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혁명을 이끈 것은 물리 법칙이 아닌, ‘IT 기술이 스스로 진화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반도체 산업 전체가 마치 성서처럼 떠받들고, 그 실현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전설적인 IT기술 발전 법칙들. 20세기 후반, 이 믿음을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고든 무어(Gordon Moore).무어의 법칙 ― 예언이 된 한 문장CPU의 제왕 인텔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은 창립자인 고든 무어(Gordon Moore)다. 반도체 산업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던 그는 2023년 3월 영면에 들었지만, 그가 남긴 법칙은 반세기 넘게 실리콘 ..

작아질수록 똑똑해진 두뇌, CPU의 이야기

컴퓨터의 한가운데에는 작지만 가장 위대한 부품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CPU(Central Processing Unit, 중앙처리장치)라 부른다. CPU는 인간의 두뇌처럼 모든 명령을 읽고 계산하며, 그 결과를 기계 밖으로 내보낸다. 그러나 이 지능적인 두뇌가 처음부터 지금처럼 작고 똑똑했던 것은 아니다. 한때 컴퓨터의 두뇌는 거대한 괴물이었고, 방 한 칸을 차지하는 덩치였다. 이 거인이 점점 작아져 손톱만 한 천재로 변해온 이야기는, 곧 인간이 ‘지성’을 실리콘 위에 옮겨온 진화의 역사이기도 하다.방 한 칸을 차지한 거대한 두뇌 – 진공관 시대 (1940~1950년대)최초의 컴퓨터 두뇌는 우리가 떠올리는 ‘칩’이 아니었다. 수천 개의 진공관(Vacuum Tube)이 연결된 거대한 금속 캐비닛이었다. 대..

[아는척 06] 인간을 닮은 기계의 내부로 - 컴퓨터 시스템 구성요소

우리는 매일 컴퓨터라는 기계와 대화하며 살아간다. 이 기계의 내부는 어떻게 생겼기에 인간의 지적 활동을 흉내 낼 수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은 놀랍게도 인간 자신에게 있다. 컴퓨터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본뜬, 우리를 가장 닮은 기계이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가장 깊은 곳에는 모든 계산과 판단을 도맡아 처리하는 핵심 부위, 중앙처리장치(CPU)가 있다. 이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는 인간의 ‘두뇌’와 같다. 그리고, 두뇌는 정보를 펼쳐놓고 다듬을 작업대가 필요하다. 이 역할을 맡은 것이 메모리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두뇌와 작업대가 아무리 뛰어나도 우리와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와 같은 입출력장치를 컴퓨터에 이어주는 통로가 커넥터, 즉 연결단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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